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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육정보] 우울한 내 아이를 지키는 책읽기

  • · 작성자|좋은마음센터 서울동작
  • · 등록일|2016-04-26
  • · 조회수|1645
우울증의 주요 기제를 밝혀낸 심리학자, 마틴 셀리그만은 미국 사회를 뒤덮은 소아우울증의 진원지를 가정 해체와 부정 양육에서 찾는다. 부모들이 자유롭게 결혼과 이혼을 반복했던 미국사회에서 아이들은 피할 수 없는 부정적 운명을 빈번히 겪었고, 그는 이 불안정한 결혼 풍조가 아이들로 하여금 인생을 비관하게 만든 사회구조적인 문제라고 지적한다. 또 그는 아이들에게 진정한 성취감을 느낄 수 없게 하는 잘못된 양육방식이 한 시대를 풍미했던 미국사회와 교육풍토 역시 소아우울증 창궐의 주 원인으로 꼽는다.

이런 미국사회의 소아우울증 후폭풍은 우리와 상관없는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아이들 역시 무척 우울하다. 우리 아이들의 행복지수는 악명이 높을 정도로 낮다. 매년 OECD국가의 꼴찌를 도맡고 있다. 일곱 명 중 한 명이 가출이나 자살을 상상한다고 말할 지경이다.

나 역시 상담실에서 우울한 아이들과 빈번하게 만난다.

은서는 몹시 우울한 아이였다. 은서와 민서의 엄마 정인 씨는 슈퍼우먼이고자 했지만 정작 불량엄마가 되고 말았다. 잠시 양육을 위해 회사를 접을까도 고민했지만 미래를 걱정하면 그럴 수도 없었다. 정인 씨는 언제나 노력하는 엄마였다. 6시나 7시에 회사가 마치면 부리나케 집으로 달려오지만 은서는 언제나 기다림에 지쳐 있었다. 민서 역시 어린이집 종일반에서 눈이 빠지게 엄마를 기다렸다.

이제 초등학교 2학년이지만 은서는 엄마의 귀가 시간에 맞춰 이 학원 저 학원을 전전해야 했다. 남편은 이런 자신의 힘든 처지를 알아주지 않았다. 남편은 은서와 민서가 잠들고 귀가하거나 새벽에서야 들어오는 날이 잦았다.

정인 씨는 저녁시간이면 더 여유가 없었다. 차라리 직장이 더 편한 곳이었다. 은서는 늘 엄마가 자신을 쳐다보며 다정한 대화를 해주기를 고대했지만, 엄마는 저녁마다 할 일이 태산 같았다. 밀린 빨래나 저녁 차리기, 설거지, 청소를 마치고 나서 겨우 자리에 앉으면 아이들은 이미 잠잘 시간이 가까웠다.

정인 씨는 그때마다 주체할 수 없는 화에 휩싸였고, 은서는 엄마의 이런 화를 고스란히 되받아야 했다. 은서의 숙제는 늘 그 주공격 대상이었다. 세 살 터울 나는 어린 민서에게는 한없이 다정하고 살가운 엄마가 은서에게는 냉골처럼 차가울 때가 많았다. 상담실에서 은서는 아무 거리낌 없이 “엄마는 날 잘 안아주지 않아요”라고 말했다. 

때로 남편이 자신이 잠들기 전에 귀가하면 남편에게도 화를 퍼부었다. 남편의 귀가 시간이 갈수록 늦어지는 이유 역시 이런 잔소리와 비난을 듣고 싶지 않아서였다. 다람쥐 쳇바퀴 같은, 그러면서도 뭔가가 서서히 무너지고 있는 것 같은 절망감에 아이와 함께 상담을 받기로 결심했다.

은서는 상담실에서 『난 우울해요』라는 책을 보며 몇 번이나 한숨을 내쉬었다. 책은 동생이 태어나며 자신을 잘 돌보지 않는 엄마 때문에 우울해하는 소녀의 심정이 잘 그려진 내용이다. 화를 쏟아내는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보며 한심하다고 여겨왔던 정인 씨는 아이의 마음이 많이 다쳤을까봐 몹시 걱정하고 있었다. 정인 씨는 상담 처음부터 자신이 불량엄마라고 단정 지어 표현하고 있었다.

하지만 더 근심스러운 것은 정인 씨가 앓고 있는 우울증이었다. 정인 씨 역시 심하지는 않지만 상당한 정도의 우울증을 겪고 있었다. 정작 본인은 자신이 우울증인지 잘 모르고 있었다. 은서는 미술심리치료를, 정인 씨는 나와 개인 상담치료를 진행했다. 가끔 남편이 함께 동행할 때도 있었다.

일단 나는 정인 씨와 함께 『감정조절 설명서』라는 책으로 독서치료를 진행했다. 변증법적 행동치료라는 최신 치료법을 일반인이 실천하기 쉽게 독서치료와 글쓰기치료 형태로 만든 책이다.

동시에 나는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 동영상을 매일 몇 개씩 감상하라고 일러주었다. 다행히 최근 어떤 스님의 책을 읽고 마음이 잠시 편안했다고 하며 이를 무척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하루 본인에게 일어난 좋은 일 3가지를 일기형태로 적는 ‘축복일기’를 써보라고 권했다.

그후 정인씨는 『아직도 가야 할 길』, 『인생 치유』같은 책을 속도감 있게 읽어냈다. 원래 꿈이 글 쓰는 일과 관련된 직업을 갖는 것이었다고 하는 정인 씨는 그림책과 추천 문학작품도 비교적 잘 읽어왔다. 특히 내가 권한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은 무척 감동적으로 읽었다고 했다. 10회 정도 상담이 이어지면서 정인 씨는 자신의 내면의 뿌리를 더듬을 수 있게, 어루만질 수 있게 되었다.

그동안 집에서 은서에게 해줄 독서치료에 대해서도 상세하게 설명했다. 아이와 책을 읽으며 대화하고, 공감을 나누는 법과 독서 후 서로 주고받을 수 있는 질문의 사례와 방법을 알려주었다. 평소 아이와 이야기를 나눌 때 아이의 비관적인 생각을 바로 잡는 법도 알려주었다.  슬픈 아이의 경우 내면에 부정적인 생각의 단서가 가득 들어차 있다. 따라서 이를 뒤바꾸는 인지행동 치료가 중요하다. 정인 씨에게 마틴 셀리그만의 『낙관적인 아이』, 알피 콘의 『자녀 교육, 사랑을 이용하지 마라』를 읽게 한 이유는 자녀와의 대화법을 어떻게 바꾸어야 할지를 체득하도록 돕기 위해서이다.

아이의 글쓰기 지도법도 잘 설명해주었다. 특히 은서에게 긍정적으로 ‘다시 한 번 생각해보기’ 노트를 꾸준히 쓰게 할 것을 주문했다. 

이미 슬픈 마음에 휩싸여버린 아이들은 부모가 생각과 양육태도를 개선해 양육방법을 상당 정도 바꿔도 그간 아이가 마음을 헤집어온 뒤틀린 생각을 모두 바로 잡는 일이 쉽지 않다. 소아우울증 역시 내면에 들어찬 부정적 정서와 부정적 세계인식에 그 뿌리가 있다.

나는 은서 엄마에게 몇 가지 독서치료적 기법을 알려주었다. 참고서도 몇 권 제시했다. 저녁마다 아이와 함께 독서를 하되, 가급적 독서지도가 아닌 독서치료적으로 책 읽기를 진행하라고 권유했다. 치유적 책읽기를 진행하면서 아이에게 긍정적 세계인식을 불어넣는 법도 잘 설명했다. 긍정심리치료적인 인지치료에서 흔히 쓰는 ‘ABCDE’ 사고변화 모델 역시 상세하게 알려주고 코칭했다.

『마음이 아플까봐』는 은서와 정인 씨 모두 깊이 공감하며 읽던 책이다. 은서가 골똘히 읽었던 『난 우울해요』 역시 정인씨가 눈물을 흘리게 했던 책이다. 『슬픔을 치료해 주는 비밀 책』은 내가 슬퍼하는 아이에게 가장 자주 읽히는 그림책이다. 『오소리 아저씨가 우울하대요』나 『왜 그렇게 우울해요』도 잘 알려진 우울감 치유 그림책이다.

아울러 은서의 긍정감을 높이기 위한 책 읽기도 비중 있게 진행했다. 잘 알려져 않은 작품이지만 『소리 지르고 싶은 날』는 은서가 무척 애착한 책이다. 책에는 심리적 어려움을 겪는 아이가 억눌린 기분을 맘껏 소리를 지르며 풀어버린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아이가 슬퍼하고 있다면 다른 심리치료에서와 마찬가지로 우선 슬퍼하는 이유를 잘 알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다양한 경로를 통해 아이가 가진 슬픔의 원인을 알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아이의 낙서나 일기는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아이와의 대화를 면밀히 관찰하면 우울감의 정체를 발견할 수 있다. 물론 우울감의 정체가 아이 스스로가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적인 것, 운명적인 사건들일 수도 있다.

이제 우울감의 정체를 어느 정도 발견했다면 앞서 말했던 인지변화 전략을 펼쳐야 한다. 가령 은서의 경우 엄마와의 따뜻한 대화의 부족 자체가 문제였으므로 앞서 말한 상호적인 책 읽기가 크게 도움이 되었다. 때로 예전 읽으며 은서가 좋아했던 그림책을 함께 다시 읽으며 엄마와 은서가 그 시절을 다시 회상하는 일 자체로도 은서는 큰 행복감을 느꼈다.

 

출처:맛있는교육